본문 바로가기
도서

가장 쉬운 폴 틸리히 입문서 - 폴 틸리히: 경계선상의 신학자

by 더쇼트 2009. 9. 14.
폴 틸리히:경계선상의 신학자(현대신학자평전 3)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박만 (살림, 2003년)
상세보기


<폴 틸리히: 경계선상의 신학자>는 칼 바르트와 함께 20세기 신학의 양대 산맥으로 활약했던 인물이면서, 바르트와는 완전히 다른 신학의 뿌리를 두고 있는 폴 틸리히의 신학을 소개하는 입문서이다. 본 책은 폴 틸리히의 <조직신학>을 요약한 것으로 아버지(저자)와 아들(저자의 아들내미)의 대화 형식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소개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아버지가 아들(이 아들도 보통이 아니다)의 눈높이에 맞추어 설명하면 아들이 정리해서 또 다시 이야기하여 깔끔하게 그의 사상을 이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각 단원의 마지막 장에는 생각해 볼 문제까지 있어 한 번에 그의 사상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이 책은 폴 틸리히의 세 권으로 된 <조직신학>에서 사용된 틸리히 만의 용어나 기존의 용어를 재해석 한 부분을 중점으로 그의 신학을 소개한다. 그만의 독특한 용어들을 이해하지 않고는 그의 신학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의 용어를 이해하기만 한다면 그의 신학은 아주 명쾌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의 신학이 다른 신학자보다 더욱 명쾌하고 체계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신학을 신학의 테두리 안에서만 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하고자 한 것 때문이다. 그의 신학을 '철학신학자', '문화신학자'라고 부를 정도로 그는 철학과 많은 교류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인간 전체의 문화를 아우르는 신학을 시도하려고 하였다. 그렇기에 그의 신학은 인간에서 출발하며, 인간에 의해 제기되는 질문일 수 밖에 없으며, 그 답,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는 그 답도 인간에게 적절하게 이해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의 질문으로 시작되는 틸리히의 신학은 신학 밖의 사람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흥미를 안겨주며, 그들의 존재론적 질문에 답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학의 영향력을 교회 밖으로까지 확대시키는 큰 공헌을 한다. 이것은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비기독교인들이 복음('복음'이라는 단어가 폴 틸리히의 신학에 적합한 지는 모르겠다)을 좀 더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비존재적 불안(죽음을 의미함)을 해소시켜줄 수 있는 하나님으로 비추어지는 틸리히의 신학에서 신의 존재는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서만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또한 그의 신학은 종교다원주의적 성격을 띈다. 파스칼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철학자나 지식인의 하나님도 아니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라."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폴 틸리히는 "나는 파스칼에 반대하여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이 철학자의 하나님과 동일하다고 믿는다."라고 이야기하였다. 여기서 폴 틸리히는 철학과 신학의 관심사가 같음을 이야기하려고 한 것이나, 그 종국에는 종교다원주의적 구원론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신학이 과연 교회의 목회 현장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스럽다. 그의 신학은 신학의 밖, 교회의 밖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정작 교회 내 테두리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 책의 지은이는 책의 서두에서 그의 신학을 '잘' 이해하면 목회 현장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였지만 목회 상담의 도구, 성도의 비존재적 불안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도구라면 모를까 그의 신학을 교회 전체의 신학으로 채택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그의 교회론 자체가 희미하기 때문이다. 더욱 더 큰 문제점은 그의 신학은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출발하지 않기에 성경적 근거가 매우 부족하다. 일례로 그의 그리스도론에서 '새로운 존재'로서의 예수를 설명한 것은 일견 합당하나, 역사적 예수와 예수의 신성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좋다'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예수의 신성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요한복음과 대립한다. 칼 바르트는 폴 틸리히 신학의 출발점부터 부정한다. '하나님의 계시 없이 인간 스스로 존재론적 불안을 이해할 수도, 그에 대해 질문할 수도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질문하고 대답할 수 있다.'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 사상은 칼 바르트와 더불어 많은 분야에서 영향을 끼쳤고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해야겠다. 그의 신학이 나치 정권 이후라는 상황신학적 특색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의 인간 존재에 대한 분석은 매우 통찰력 있는 것으로 인정된다. 예를 들어, '마성'같은 개념들은 기독교인에게나 비기독교인에게나 세상을 바라보는 훌륭한 틀을 제공할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어떻게 그의 신학을 교회 내에서 교회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이용할 것인가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