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그 활동을 간만에 재개하면서 그동안 읽지 않고 책장만 장식해 두고 있었던 책들을 꺼내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중 가장 두꺼운 녀석이 스티븐 킹의 <미스터 메르세데스>였었죠. 변색까지 일어난 걸 보면 사두고 읽지 않은 지 5년은 됨직합니다. 이런 류의 소설을 즐겨 읽는 것도 아니고, 단지 스티븐 킹이라는 작가가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한번 사본 책이었어요.

이 책은 21세기 초 불황을 겪고 있던 미국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모 채용박람회가 열리기까지 밤을 지새우며 줄 서서 기다리던 구직자들을 '메르세데스 킬러'가 벤츠 세단을 몰고 그대로 들이받아 버리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 사건이 있고 난 뒤, 퇴직한 경찰로 TV나 보며 시간을 때우던 형사 호지스에게 메르세데스 킬러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면서까지 말이죠. 호지스가 그 편지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그의 추리는 시작됩니다.
이 책은 추리물은 아닙니다(사실 그런 줄 알고 산 거였는데). 그보다는 심리 스릴러라 볼 수 있습니다. 살인자와 그를 쫓는 인물의 관점에서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이죠. 호지스의 시점뿐만 아니라 메르세데스 킬러의 시점에서도 이야기가 전개되죠. 모든 패를 처음부터 다 까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한 쪽의 행동과 그에 따른 반대쪽의 심리적 영향과 반응을 보는 게 주된 재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당시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나간다기보다는 퇴직 형사가 새로운 인물과 관계를 맺고 이들의 조력을 얻으면서 독자들은 이미 알고 있는 그 살인자와 만나는 과정을 그립니다. 한편 살인자의 시점에서는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과거의 사건이 밝혀지면서 살인자가 된 배경이 드러나죠.
이야기 전반에서 노골적으로 묘사되는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냉소적인 작가의 태도 또한 다른 재미 요소입니다. 사건이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중을 장악한 미디어를 끊임없이 꼬집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국의 배우, SNS, 제품들이 자세히 그려지죠. 그 덕에 무엇을 상상하든 미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 줍니다. 제 경우는 읽는 내내 미국 드라마를 계속 떠올리게 되더군요.

600페이지 분량의 두꺼운 책이지만, 읽기에 부담스럽진 않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건의 전말 대부분은 초반에 다 보여주기 때문에 독자가 머리를 써야 하거나, 기억해 두어야 하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두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즐겁게 상상하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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