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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by 더쇼트 2010. 5. 14.

상상의 공동체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베네딕트 앤더슨 (나남,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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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드컵은
민족민족주의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행사일 것이다. 나는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세계의 축제인 월드컵에서 우리 민족에 열광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그 순간만큼은 옆에서 함께 응원하는 사람의 익명성은 한 민족이라는 범주 안에서 전혀 어색할 것이 없다. 우리 민족이 골을 넣는 순간 모르는 사람과 껴안고 즐거워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민족이라는 단위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동안 누려왔던 민족이 제공하는 즐거움의 이면에 민족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된 것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민족이 상상된 것이라는 사실은 지구본을 손으로 휙휙 돌리며 신기해 하는 아이에게 철저하게 분절된 민족간의 경계가 사실은 제국주의국가의 자기보존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이 인식되는 순간 그 동심은 파괴되어버린다.
      인간이 얻는 많은 즐거움 중에 비판의 즐거움또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이 민족이라는 개념은 적대적인 민족에게 비판을 퍼부으며 그 곳에서 비판 자체에서 오는 쾌락을, 그 민족보다 우리가 더 우수하다는 우월감을 누리게 한다. 그러나 민족이 상상된 공동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 동안 대중의 민족의식이, 다른 민족을 공격하게 만드는 그 기제가 결국 국가 관료의 안녕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고, 그 동안의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과 동시에 속았다!”는 생각으로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판단하기 대단히 힘들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한계성과 본성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한한 인간은 죽음이라는 불연속성이라는 두려움을 종교로서 해결하였고, 그 종교가 쇠퇴할 무렵 다시 부상하는 불연속성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민족은 등장한 것이다. 또한 인쇄자본주의라는, 언제나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인간의 본성은 이 상상의 공동체의 등장과 보급에 일등공신이었다. 이 결과로 탄생한 상상의 공도에 아래 대중은 안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신의 대리인으로서의 왕조국가는 더 이상 자신들이 신의 대리인이 아닌 그저 그 민족을 대표하는 민족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위협받는 것이었다. 이에 국가가 형성하는 민족주의, 관주도 민족주의(official nationalism)는 대중들의 모든 문화 전반을 통제하여 자기보존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인간의 본성과 한계성에서 출발한 민족주의는 가치판단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은, 바로 국가가 형성해 온 민족주의에 담긴 거짓된 속성이다. 관주도 민족주의가 권력에게 가져다 주는 이점은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비용은 그저 대중들의 민족의식을 자극만 해주면 되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이 자극의 과정에서 기억과 망각의 패러독스가 일어난다. 즉 대중들이 전달받는 정보는 그 정확성이 의심스럽고 모호한 문구로 장식되어있다. 그러나 그 정보의 질이 어찌됐건 권력에 의해 자극 받은 민족은 생존이 걸린 문제인 것처럼 분노하게 되고, 게다가 이러한 권력의 자극에 반대하거나 침묵하는 이에게는 배신자의 낙인을 찍음으로써 대중들 스스로 의견을 한 군데로 몰아주는 조정작용을 거치게 된다. 권력 주체는 이 민족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의 궁극적 이익을 도모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
       관주도 민족주의는 동시대의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책에서 언급되는 센서스, 지도, 박물관이다. 오늘날에는 신문, 방송, 인터넷 등의 언론매체들이 관주도 민족주의의 최전선으로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공영방송인 KBS김비서로 불리는 이 판국에 정말로 이런 매체들이 권력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취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관주도 민족주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위험한 증거가 될 것이다. 따라서 앤더슨의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로부터 우리가 권력에 의해 속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로 국가는 국민이 주인이며 정부는 우리에게 봉사하는 것인지,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을 해 보아야만 한다는 정언적 명령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