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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역사철학의 고전! <역사란 무엇인가>

by 더쇼트 2010. 4. 3.

역사란 무엇인가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E. H. 카 (까치,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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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서 카가 하고자 하는 작업은 역사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오히려 카는 역사학자의 존재와 그가 하는 작업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다. 1장에서는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믿음, 2장에서는 사회 속의 개인으로서 역사가의 역할, 3장 이후부터 마지막까지 역사가의 역사기술행위의 유용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역사가의 객관성일 것이다. 카는 이를 변호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고 있다. 카는 이 객관성을 획득하기 위해 역사가의 노력을 꼽고 있다. 이것은 아이러니하다. 왜냐하면 카는 역사가 또한 사회와 역사상의 어느 한 지점의 산물이며 이 사회적 상황 전제 밖에서 결코 존재하지 못함을 그도 깨닫고 있는데 불구하고 객관성은 이것을 초월한 어떤 것이 아닌 역사가 자신의 틀 내에서 이룩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많은 부분에서 카는 역사가와 사실 혹은 역사가와 사회 등의 상호작용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 이것을 보면 그도 1장에서 표현했듯이,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관계는 서로 주고받는 대화이고 이것을 평등한 관계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그 객관성은 역사가로부터 시작함을, 역사가의 해석으로부터 출발함을 역설하면서 역사가가 모든 것을 통제할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1]

    인간에게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카도 이에 동의하고 역사가의 자료 선택과 해석에 있어주관성이 포함될 수 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역사 자체 또한 역사가의 개입 없이 역사는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칸트는 역사적 사실 자체에서는 규칙적인 속성이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본능뿐만 아니라 자의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법칙처럼 일정하게 움직일 수 없는 노릇이다. 또한 인간은 완벽한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도 없기에 역사적 사실 자체는 매우 불규칙하다. 그렇기에 이를 정리하고 인간에게 유용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역사가의 개입은 필연적이다.[2] 무의미한 것은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권위는 역사가에게 있기 때문에 역사가와 사실 관계에 있어서 역사가는 사실보다 주도적 위치에 있으며, 역사 기술은 역사가에게 유리한 입장에서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책 초반부에 역사가와 사실을 평등한 위치로 보았던 카의 진술,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정의했던 그것은 진정한 대화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역사가는 대화를 통해 과거 사실을 이해한다기 보다는 판단한다. 문서로서 남겨진 과거는 말을 할 수 없다. 당대의 사람, 그것을 기록했던 역사가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가의 입장은 그 어떤 주체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놓여있으며 그를 둘러싼 사회와 환경적 요소들, 즉 그의 세계관에 의해 단정되고 판단된다. 카는 이 책에서 오직 현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사가가 특정 세계관에 입각하여 분석할 수 밖에 없음을 역설하고 있지만 연구의 대상이 되는 역사적 사실을 살았던 사람들의 세계관의 중요성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현재 역사가의 시각으로만 바라본 사실은 역사적 왜곡이 발생하기 매우 쉬운 조건이 된다. 당대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않고는 대화란 불가능하다. 역사가는 바로 이 점, 과거 사람들은 현재 사람들과 다른 세계관을 가졌다는 것에 유념해야만 하고 이에 입각하여 역사를 써야 할 것이다. 김기봉은 그리하여 카의 정의를 수정하여 역사란 과거의 문화와 현재의 문화 사이의 대화라고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

    카는 역사가의 작업에 대한 정당성을 더욱 굳건히 하고자 객관성이라는 것을 도입하여 역사가 존재의 정당성을 변호한다. 카는 역사가는 객관성을 획득할 수 있다는 믿음과 그것은 역사가의 진지한 탐구 태도에 있는 것으로 간단히 일축해 버리고 만다. 그리고 역사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이러한 역사가의 탐구 자세를 이해해 줌으로써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에 접근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기까지 한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역사가의 해석을 믿든지, 아니면 직접 역사가가 되어서 역사 해석을 하든지라고 표현할 수 있다. 독자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역사가가 믿을 만 한 사람이라고 믿어주는 것뿐이다.

    카는 3장부터 객관성에 대해 논하는 것에서 역사학의 유용성에 대해 논하는 것으로 논지를 바꾸기 시작한다. 유용성이 논의되면서부터 카가 주장했던 객관성은 모순이 되고 만다.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실 중에 역사가에 의해 선택되는 사실은 개연성이다. 카의 말에 따르면 개연성은 어떤 사건에 대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른 것이고, 그 가능성은 어떤 목적에 유용한가 유용하지 못 한가로 알 수 있다. 카에게 있어서 유의미한 역사적 사실이란 오직 그 사실이 교훈을 제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른 것이다. 그렇기에 카는 역사의 일반화를 강조하였고, 시대를 관통하는 교훈이 없는, 일반화 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은 무의미한 것으로 보았다.[4] 그러나 문제는 같은 사실이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는 교훈이, 누구에게는 쓸모 없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선택된 역사는 특정한 이익을 공유하는 집단의 역사일 수 밖에 없으며 이 상황에서 이미 객관성이란 폐기되는 것이거나, 혹은 특정 집단 이익의 정당성을 위해 이용되는 도구밖에 되지 못하는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에릭 홉스봄은 역사가 집단 이외에 과거를 발견하고 기록할 사람이 없다는 특수성은 그들의 연구가 사회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역사가는 권력으로부터 항상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어떤 역사가 집단은 자발적으로, 혹은 압력에 의해 특정 이데올로기에 묶여있을 수 밖에 없음을 피력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국가간의 영토 분쟁이다. [5]국가 간의 영토 분쟁에서 역사는 중요한 권위를 가지는데, 역사가는 이 때 자발적인 애국심에서 우러나오든, 외압을 받든 분쟁의 대상이 되는 영토가 자기들의 영토였음을 변호하는 중요한 권력의 도구가 되는 셈이다.

역사교과목의 탄생배경을 살펴보면 역사란 애초부터 공적 유용성과 특정한 엘리트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태동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근대 초 유럽에서 역사가 하나의 교과목으로서 탄생된 계기는 휴머니즘의 영향인데, 휴머니즘은 그리스-로마 시대로의 회귀를 추구했으며, 그리스-로마 시대의 정치는 공적인 회합을 통한 정치였다. 정치에서 뛰어난 언변은 공적 회의에서 권력 획득을 위한 매우 중요한 조건이었기에 그리스-로마 시대의 인간상을 추구하는 근대 유럽에서도 능변을 위한 학습을 강조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뛰어난 언변을 갖추기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최고로 꼽았기 때문에 이를 학습하기 위해 역사를 연구하는 것의 중요성이 매우 부각되었고 이에 역사교육이 실시되었다. 권력 획득을 위해 역사교육을 받아야 한다면, 그 교육의 대상은 권력획득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 즉 정치 엘리트들로 한정될 수 밖에 없다. 역사교육이 시작됨과 동시에 역사는 계급적 성격을 부여 받게 된 것이다.[6]

카에게 있어서, 역사가에게는 인간으로서의 많은 한계성이 있음에도 유용성과 객관성 둘 다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인류가 궁극적인 목적을 향하여 나아 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믿음과 그 이성은 전 인류에게 유용한 지식을 제공해 준다는 믿음을 내포하고 있다. 이것을 김현식은 모던적 강박증[7]이라고 명명한다. 카의 이러한 믿음은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조금 더 발전 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헤겔의 역사철학에서 역사의 과정 속에서 인간의 이성의 능력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즉 역사 속에서 어떠한 목적이나 의도 없이 무의식 중에 이성은 발현하게 되며 궁극적으로 인류의 진보에 기여한다는 것이고 이 역사에 대한 인식은 후대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8] 카는 역사가 궁극적으로 진보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것은 헤겔과 같이 이성의 무의식적인 작용에 의해서가 아닌 소수의 역사가만 지니고 있었던 역사의식이 대중에게로 확대되면서 대중은 역사는 발전한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함으로써 역사발전을 위한 총체적인 노력이 진보로 나타난다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이러한 대중의 역사인식은 역사가 쓰여진 후대에 의해서만 올바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고 역사의 진행과정에서도 가능하다.

카에게 있어서 진보는 자기 자신과 자신의 환경을 이해하고 지배하는 인간 능력의 증대[9]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자면, 진보란 자연지배이다. 이것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본 카의 모던적인 한계로 생각된다. 그 모던적 한계점은 인간만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또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 점이다. 인간의 자연 지배력 강화는 생태계의 파괴와 변화를 낳았고, 이에 환경사(Umweltsgeschichte)가 대두되게 되었다. 즉 카의 관점에서 인간의 진보는 자연의 역사에서 퇴보를 낳게 된 것이다. 인간의 역사와 환경사의 대립은 결론적으로 역사에서 진보라는 개념을 퇴출시켰다.[10]

또한 카의 진보 개념 자체는 다른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어떤 주체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에 있어서 역사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역사는 민족주의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민족의 개념이 원래 존재하는 것인지 허구적으로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지는 않겠지만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있어서 역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형성된 민족성은 종종 타 민족에 대한 폭력의 정당성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홀로코스트이다. 카의 주장에 따르면 자연에 대한 지배력이 증가하여 한 단계 진보 하였다. 그러나 진보는 대량학살에 기여하였다.

진보라는 개념이 역사학에서 사라진다면 역사학의 이유는 무엇인가? 적어도 카에게 있어서 역사가 진보를 가져다 주지 못한다면 역사학의 존재 이유는 없다. 역사가 가져다 주는 유용성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흄은 역사가 가져다 주는 유익 세 가지를 언급했다.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키고,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하고 덕을 함양하는 것이다. 역사가 없었더라면 인간의 이해력은 늘 제자리 걸음을 했을 것이다.[11] 하지만 역사의 유용성이 흄의 설명에 한정되어 있다면 역사는 그저 취미 생활이 가져다 주는 가져다 주는 즐거움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에게 좀 더 깊은 차원의 의미를 부여해야만 한다. 자연지배력 향상으로서의 진보 개념이 아닌 다른 의미로서의 진보를 이야기 해야만 한다.

진보를 이야기 하기 전에 다시 유용성의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역사학이 가져다 주는 유용성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여기서부터 출발하려고 한다. 카의 진보 개념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단순히 유용해서만 되는 것이 아니고 한 쪽의 유용성이 다른 쪽에게 파괴적인 개념이 되어서는 안 되는 균형을 이루는 어떤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개념 자체가 균형을 의미하는 것이거나, 균형을 이루게 해주는 수단으로서의 개념을 도입해야만 할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에릭 홉스봄의 논리를 근거로 역사는 정치와 불가분한 관계에 있음을 말하였고, 적어도 근대부터 역사는 태생적으로 정치를 위한 도구였음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역사의 한계와 동시에 역사가 가진 거시적 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역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불문하고 정치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역사의 해석은 정치 권력의 아래에 있는 주체들의 정체성을 확립해주는 기능을 하고 이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따라서 올바른 역사란 인간에게 유용한 지식을 제공해 주되 파괴적인 결과를 막는 역할 또한 담당해야 한다. 즉 역사는 평화에 기여해야만 한다.

역사가 평화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노력이 수반된다. 첫째로, 역사가 자신의 연구 활동이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역사가는 정치학에서 말하는 리얼리즘, , 평화는 힘의 균형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바탕에서 연구해야 한다. 또한 역사학과 정치학은 상보적 관계로서, 역사학은 연구 결과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지는 않은지 정치학에게 힘의 균형에 있어서 중립성을, 정치학은 역사학을 통해 이론의 현실성을 물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모리슨과 푸코의 역사철학적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역사쓰기를 지배권력지배부터 희생된 사람들의 은폐된 담론들을 이끌어 내고 이것을 재구성 하는 것으로 보았다.[12] 이들 역사쓰기의 포스트모던적 형식까지 논의를 확장시킬 필요는 없다. 이러한 역사철학에 입각해서 그 동안 옳다고 생각했던 역사들을 의심해 보아야만 한다. 역사는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옹호해왔으며 역사가는 특정한 역사적 관점을 지키기로 한 권력집단들에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왔다. 왜냐하면 이러한 권력들은 역사를 보급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인 학교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13] 이러한 권력으로부터 보호된 역사에 대한 비판은 영향력이 거의 없었으므로, 후대의 역사가는 선택된 역사의 뒤로 배제된, 유용성이 없다고 판단되었던 역사들을 다시 발굴해 내고 선택된 역사, 소위 승자의 역사라고 표현하는 역사를 재평가하는 작업을 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카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과 그의 진보 개념을 자연 지배가 아닌 평화의 개념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역사의 객관성과 일반화에 있어서 좀 더 포스트모던적인 방법, 언어학적 분석을 통해 해체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카에게 진보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역사의 존재 이유(raison d’etre)가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앞서 카의 진보에 대한 집착을 모던적 강박이라는 말로 인용한 바 있다. 계속해서 카의 진보론을 다른 의미로 대체하는 노력을 기울이면서까지 유지하려고 하는 것, 스스로를 모던적 강박에 맡겼던 것은 이론적인 엄밀한 논리체계에 의한 변호라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인간은 담론을 통해 차이를 확인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포스트모더니즘) 이 아니라 합의를 찾을 수 있다는(모더니즘)[14] 일종의 믿음 때문이었고, 마치 유신론자가 무신론자에게 거의 완벽한 논리로 무장한 무신론을 들었을 때 나타나는 반응, 무신론자가 된다면 인생의 목표가 상실될 것만 같은 두려움, 그런 두려움에서였다고 말하고 싶다. 또한 역사가 과거와의 대화가 가능하든 불가능하든 역사에게 정치를 움직이는 힘이 있음은 자명하기 때문에 역사 평화주의는 역사가 어디로가고 있는지 항상 물어야만 하는 역사가들에게 하나의 지침이 되리라 생각하는 바이다.



[1] 김현식, <기억된 미래, 상상된 과거: 카의 역사론>, 영국 연구 제 13, 2005, p330

[2] 김수배, <칸트의 도덕철학과 역사철학의 긴장관계>, 한국칸트학회논문집 <칸트연구> 21, 2008, p 11

[3] 김기봉,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푸른역사, 2000, p37

[4] 김현식, <기억된 미래, 상상된 과거: 카의 역사론>, 영국 연구 제 13, 2005, p324

[5] 에릭 홉스봄, <역사론>, 민음사, 2006, p432

[6] 설혜심, <역사를 왜,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 – 근대 초 영국의 교육담론 분석>, 영국 연구 제 21, 2009, p40

[7] 김현식, <기억된 미래, 상상된 과거: 카의 역사론>, 영국 연구 제 13, 2005, p316

[8] 나종석, <헤겔 역사철학의 근본 주장 및 그 의미에 대하여>, p38

[9] 김기봉,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푸른역사, 2000, p48에서 재인용

[10] 위의 책, p43

[11] 이태하, <흄의 인간학은 반역사적인가? : 철학과 역사의 상보성>, 범한철학회논문집 <범한철학> 53, 2009, p122

[12] 이영철, <모리슨(Toni Morrison)과 푸코(Michel Foucault): 문학의 전복적 역사쓰기>, 미국학 논집, 2007, p129

[13] 에릭 홉스봄, <역사론>, 민음사, 2006, p441

[14] 김기봉,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푸른역사, 2000, pp187-1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