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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민중의 상징 민중, 예수의 상징

더쇼트 2009. 12. 22. 20:10

예수 민중의 상징 민중 예수의 상징
카테고리 종교
지은이 권진관 (동연,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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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가끔 '실수로' CTS(기독교 방송)을 볼 때가 있다. 몇 초 정도만,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볼 때마다 목사는 돈 얘기를 하고 있다. 어떤 목사는 모 신도가 몇 천만원을 헌금했다고 하면서 그의 큰 믿음을 칭찬하고 또 다른 목사는 성경에는 부자되는 법이 다 나와있는데 성경책 들고 다니면서 돈 걱정하는 사람들 이해 못하겠다고 한다. 그들에게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부자가 천국 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와 같은 성경 구절을 모르는 것일까? 나는 다시 CTS 채널을 삭제해 버렸다.

안타깝게도 성경 속에서 나타나는 복의 의미는 자본주의 시대에 맞물린 탓에 '돈'이라는 한 가지 개념으로 환원되어 버렸고, 예수가 인간들에게 던지는 비판과 주옥같은, 인간성 개조에 필요한 교훈들은 사장되고 말았다. 보수신학에서는 진보신학을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요즘 추세로 보면 보수신학이야말로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있다.

이 시대에 민중신학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대단한 부담이 될 수 있다. 우선 '민중'이라는 단어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민중'이라는 단어가 담고 있는 고유한 의미를 다른 단어와 차별을 두며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지만 이 신학을 널리 보급하고 싶다면 현대 사회에 적합한 용어로 대체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이 책의 저자는 민중신학은 탈정치화되어 그 힘을 잃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배금주의 설교가 판치는 이 시대, 개나 소나 자기들이야 말로 성경적이고 예수 중심이라고 외치는 이 마당에 '진짜배기들'에게 까이던 민중신학이 강조하는 '예수의 게슈탈트'야 말로 우리가 본 받아야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게슈탈트가 강조된 나머지 대 놓고 '행동으로 얻는 구원'이라는 결론을 내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많다.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사탄의 속임수'라고 했던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과 같이 믿음이란 것은 결국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진정성을 획득한다고 볼 수는 있지만,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행동이란 사회운동을 말하고 그것을 통한 가난의 구제가 곧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의 게슈탈트를 따르는 다양한 방식들을 좁은 스펙트럼으로 축소해 버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천도교 사상의 가르침을 신학적 지침으로 삼으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적 성격 또한 그 필요성을 제고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민중신학이 덜 체계적이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고 했다. 민중신학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변화의 필요를 느낄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용어 문제에서부터 그들이 강조하는 사회운동의 의미와 방법까지 이 시대에 조금 더 적합한 모습으로 변화하길 바라며 미래에 다시 '정치화'된 '다른 이름'의 민중 신학을 만나보고 싶다.